스무 살 초반에 한 해가 지나가서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셋이 될 때는 한 살 더 든다는 것이 한 살 한 살 아쉽고, 귀하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반복되면서 시간이 더 지나고 이십 대 후반이 되고 나서는 무덤덤해진 것인지 새해가 다가와도, 새해 첫날이 밝아도 이전에 느꼈던 만큼의 감회를 느끼지 못했고 새로운 각오나 다짐의 강도와 그 칼날도 무뎌졌었다. 그런데 올해 2019년 30대에 들어설 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로 앞으로에 대한 다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9살에서 20대로 들어설 때는 새롭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한 설레는 다짐이었다면, 29살에서 30대로 들어서는 2019년 1월 1일의 다짐은 지나온 지금까지의 시간에 대해서 이전보다 진하지만 동시에 이전보다 덤덤해진 진한 아쉬움이 먼저 느껴졌고, 그리고 아직 진행 중인 내 인생의 연속선상에서 여기서 아직 매듭지을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이전보다 조금 더 무겁지만 새롭지는 않은 다소 무덤덤한 그런 책임감이 느껴졌다. 10년 전과 똑같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만 그 무게감이나 특정한 하나에 대한 기대의 크기가 더 커졌을지는 몰라도, 기대의 경우의 수의 다양성과 선택권은 줄어든 것이다.
20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미 내 인생이라는 책에 들어올 것은 어느 정도 들어왔고, 내 인생에서 나갈 것은 어느 정도 나갔다. 내 인생이라는 나만의 책에 들어온 내 인생의 주제를 이제는 당장 내보내기도 힘들고, 빠져있던 주제를 당장 다시 집어넣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진행되어온 특정한 흐름 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잘 보듬고 다듬으면서 마음과 열정을 쏟아서 잘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 주제를 바꾸거나 바꿔야 할지라도..
내가 만약 20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생각, 사고방식과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어떤 일 들을 경험하게 될까. 지난 20대에 나는 무엇에 의해 생각하고 선택해왔고, 무엇에 의해 내 습관과 행동들이 결정되어 왔을까.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어도 세상과 상황을 바라봤던 관점, 생각 그리고 선택들이 그 당시에는 정답은 아니더라도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더 나은 선택과 대답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선이나 다른 더 좋지 않은 선택을 했을 리는 없다. 사람은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그렇게 밝혀지고 판명되더라도 눈앞의 상황에서는 늘 본인에게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새해에 다짐을 담기 위한 2018년 다이어리와 필기구를 사기 위해 문구점에 방문했을 때 내가 더 마음에 드는 디자인, 색상, 기능성과 합리적인 가격을 가진 제품을 두고 그보다 못한 제품을 선택해서 구매할 리는 없다. 현재의 기준, 관점과 시야에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과 선택이 그 당시에는 최선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경험, 가치관과 시야가 바뀌어 가면서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선택이 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나서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 의미 없는 선택이 되었지만 또다시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 결과적으로 다시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좋지 않은 선택 의미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으로 바뀔 수도 있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 또 지나기 전에는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의미 있는 선택인지 의미 없는 선택인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인지 후회하게 되는 선택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시야,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최선의 결정과 선택을 한다. 내 지난 20대 또한 그런 최선의 선택의 과정을 거쳐 최선의 결정들을 해오는 시간들의 연속선이었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 그 당시의 선택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게 반드시 정답은 아니고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가 좋은 선택과 과정의 선상이든 좋지 않은 선택과 과정의 선상이든 현재의 과정과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오늘과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일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오늘과 현재라는 좋은 기회는 내가 생을 마감하기 전날까지 계속해서 내 앞에 놓여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변하고 다가올지 모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최종적인 마침표를 찍는 순간의 내 모습이다. 좌절하고 상심해 넘어져 있는 그 순간이 마침표가 이미 찍힌 듯이 느끼고 있는 그 순간은 마침표가 아니라 항상 쉼표이다. 내일이라는 시간과 기회는 항상 쉼표 뒤에 존재한다. 내 삶의 마침표가 찍히는 날의 바로 그 전날까지 내일과 기회는 존재한다.
그리고 마침표를 쉼표로 생각하고 바꾸는 힘과 동력은 어디까지나 내 마음가짐과 내 오늘 하루 속의 작은 습관에 달려있다. 오늘 내 일상 속에서 상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나은 생각과 선택을 만들어 나간다면 결국에 더 나은 내일은 반드시 찾아온다.
오늘의 작은 실패와 막막함 앞에서 너무 슬퍼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자. 피해갈 수는 없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털어내고 오뚝이같이 일어서서 끊임없이 마침표를 쉼표로 바꾸고 더 나은 오늘 일상과 좋은 선택을 만들어가자. 이와 같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나은 오늘 일상과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내는 습관은 추상적인 생각과 다짐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유지되지도 않는다. 더 나은 오늘 하루와 선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잘 디자인된 나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스템으로 나를 계속해서 이끌어주는 신호등 같은 도구와 공간들이 내 일상 속에 내 생활공간과 작업공간 속에 가까이 잘 디자인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리 지치고 흐트러져도 일상속에 가까이 잘 디자인되어 있는 그 공간과 도구들에 의해서 오늘 하루는 다시 내가 계획하고 원해왔던 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만들어져 간다. 그렇게 내가 원하고 상상하는 내일과 꿈은 오늘의 일상과 내 현실이 되어간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오늘의 결과가 아쉽고 후회될지라도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을 것이다. 어제의 아쉬움과 후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에 마침표는 아주 멀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어서 쉼표를 찍자. 그리고 오늘 일상과 내 주변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디자인하고 설계하자. 오늘 일상 속 지금이 남은 내 삶의 스토리의 가장 첫 출발점이고 그 방향과 신호등은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가 설계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 최종 도착지는 지켜보고 가봐야 알겠지만, 내 삶의 마지막 날의 전날까지 내일을 바꿀 수 있는 오늘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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